역사책방은 9월 27일(월) 오후 9시에 개최하는 1주1책 온라인 북토크를 책방 회원에게 무료로 개방합니다.

9월 27일 온라인 북토크 ‘건축, 근대 소설을 거닐다’편에 김소연작가가 스페셜 게스트로 참여합니다.

김소연 작가는 ‘ 한국과 미국에서 철학과 건축을 공부했고 중국에서 건축을 가르쳤습니다. 주변인, 경계인, 잊힌 삶과 환경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 《경성의 건축가들: 식민지 경성을 누빈 ‘B급’ 건축가들의 삶과 유산》 《미치지도 죽지도 않았다: 파란만장, 근대 여성의 삶을 바꾼 공간》등이 있습니다.

참여를 원하면 아래 줌 링크를 클릭 또는 터치하시면 됩니다.

1주1책 온라인 북토크는 역사책방이 선정한 책을 매주 한 권을 읽고 줌에서 모여 함께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온라인 북토크 참여하기_아래 박스에서 줌앱으로 참여하기–참여하기를 북토크 시간에 맞춰 클릭 또는 터치해주세요

Meeting does not exist: 93986451622.

현재 진행중인 시즌4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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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문화주택은 1920년대 초 일본에서 수입된 명칭인데, 신문이나 잡지에 소개된 이상적인 문화주택은 뾰족한 박동지붕에 베란다와 포치가 있는 서양의 방갈로식 주택이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문화주택은 특정한 정의가 따로 있지 않았다.
    2. 건축주, 건축가, 시공자의 역할이 분리되었는데, 특히 건축가는 근대적인 건축 교육을 받은 전문가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문화주택을 설계한 건축가는 소수의 조선인 건축가를 제외하면 대부분 일본이 건축가였고 시공도 일본 회사가 했다
    3. 문화주택 소비자는 경제력과 권력을 가진 소수의 고위 관료, 신문화에 익숙한 기업가와 자산가들이었다. 그래서 문화주택은 부의 상징이었고, 서구의 근대화를 부러워하고 추구하는 지식인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4.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상적인 주택’, ‘스위트홈’의 대명사로서 문화주택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대중의 욕망은 더욱 과장되어 사회적 문제와 연결되었다. 개점 초기 백화점은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려고 문화주택을 경품으로 내놓을 정도였다.
    5. “쥐뿔도 없는 조선 사람들이 은행 빚을 얻어 문화주택을 짓고 스위트홈이라고 좋아한다. 그러나 몇 달 못 가 빚만 남고 스위트홈은 외국인에게 넘어가고 조선 사람은 하루살이 꼴로 사라진다. 그러니 우리에게 문화주택(文化住宅)은 모기가 질병을 옮기듯 재앙을 가져오는 문화( 蚊禍住宅)이 아닌가!”
    6. “차라리 높은 나무 위에 원시주택을 지어놓고 스위트홈이라고 부르며 새똥이나 곱게 싸라” 참으로 시원한 냉소였다.
    7. 허영기 많은 젊은 부부가 칠 줄도 모르는 피아노를 사놓고 서로 먼저 치라고 말하며 속으로 가슴 졸였을 장면을 생각하자 폭소가 터져 나왔다.
    8. 한국 최초의 근대건축가 박길룡의 지인이 그랬다. 해외 유학을 마치고 온 지인은 유행을 좇아서가 아니라 생활 개선을 위해 문화주택을 지었다. 건평 50평에 벽돌로 지은 2층 양옥이었다. 1층에는 거실, 식당, 주방, 서재를 두고, 2층에는 침실 세 개 외에 욕실과 변소와 세면실을 따로 만들었다. 2년 뒤 지인은 문화주택을 비워둔 채 그 옆에 한옥을 새로 지어 살았다.
    9. 박길룡은 조선의 기후와 조선인의 정서에 맞는 문화주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박길룡만이 아니라 다른 조선인 건축가들도 근대적 주택개량안을 내놓았는데 대개 서양식, 일본식, 조선식을 절충한 것이었다.
    10. 어찌 보면 칠 줄도 모르는 피아노를 사들여 문화인 행세를 하고 싶었던 허영세 부부도 그들 나름대로 절충식 문화주택을 꾸민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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