웁살라대학교를 졸업하고 스웨덴의 유력 일간지 《아프톤블라데트(Aftonbladet)》의 편집주간을 지냈다. 현재는 《다겐스 뉘헤테르(Dagens Nyheter)》에서 금융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국제 금융?정치와 페미니즘에 대한 기사를 주로 다룬다.

경제학과 가부장제의 관계를 논한 저서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는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 책을 “여성, 경제, 돈에 관한 영리하고 재미있고 읽기 쉬운 책”이라고 평했다.

《지구를 구할 여자들》은 기술 발전의 역사에서 여성과 여성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어떻게 수많은 아이디어를 배제하고, 결과적으로 미래를 향한 혁신을 방해하는지를 풍부한 사례와 재치 있는 언어로 증명한다

저서소개_지구를 구할 여자

진정한 남자는 가방을 굴리지 않는다?

인류의 유서 깊은 발명품인 바퀴를 여행 가방에 다는 데 무려 5000년이 걸렸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캐리어’라고 부르는 바퀴 달린 가방이 등장해 전 세계 여행 산업의 판도를 바꾼 것은 1970년대가 지나서다.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찍고 지구로 귀환할 때까지도 손잡이로 짐가방을 들어 옮기는 것이 당연했다는 이야기.

고작 가방에 바퀴 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발명이라고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을까?

이 수수께끼에 매달린 로버트 쉴러나 나심 탈레브 같은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조차 놓친 답은 바로 ‘진정한 남자는 무거운 짐을 직접 든다’ ‘여자는 짐을 들어 줄 남자 없이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라는 성별 고정관념에 있었다.

과거 서구 남성들에게 자신의 완력을 놔두고 바퀴로 가방을 굴린다는 건 모욕에 가까웠다. 그런 가방은 여자들이나 쓸 만한 것이지만, 어차피 여자 혼자 어딜 그렇게 가겠는가.

지금 들으면 유치하고 어처구니없는 이런 생각이 수천 년 동안이나 기술 혁신을 지연시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바퀴 달린 가방만이 아니었다.

약 100년 전에 휘발유차와 나란히 유행했던 전기차는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나사(NASA)는 어쩌다 우주복 제작을 여성용 속옷 회사에 맡기게 되었을까?

인간만큼 집안일을 잘하는 로봇은 왜 아직 없을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 역시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뿌리 깊은 편견과 관련이 있다.

전작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에서 주류 경제학이 지워 버린 여성의 자리에 주목했던 카트리네 마르살은 신작 《지구를 구할 여자들》을 통해 이처럼 인류의 발목을 붙잡아 온 오랜 편견과 차별을 파헤치며 남성 중심의 과학기술사를 통쾌하게 뒤집는다.

바퀴 달린 가방에서 전기차와 AI까지

편견과 차별은 어떻게 혁신을 가로막는가

과학기술여성연구그룹의 공동 설립자인 임소연(《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저자)과 하미나《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저자)가 이 책을 읽고 나눈 대담에서 하미나가 말한 것처럼, 여성의 눈으로 과학기술을 본다는 것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다.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층위에서 접근한다.

첫째는 앞서 말한 바퀴 달린 가방(1장)처럼 성별 고정관념이 어떻게 기술 발전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는가를 역사를 통해 증명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가 전기 자동차(2장)다. 일론 머스크가 이 산업에 뛰어들기 한참 전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전기차는 이미 유럽과 미국 대도시를 달리고 있었다.

시동 걸기 힘들고 시끄러운 휘발유차가 남성을 위한 스포츠라면, 편리하고 안전한 전기차는 여성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런데 이 ‘여성적’ 이미지가 잘나가던 전기차의 발목을 붙잡았다.

안락함을 원하는 건 여자들뿐이고, 남자들은 휘발유차의 크랭크를 돌리다 턱뼈가 나갈지언정(안타깝게도 캐딜락의 최고 경영자 헨리 릴런드의 친구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여성스러운 전기차에는 눈길도 안 준다는 것이 당시 자동차 산업의 판단이었다.

‘여성적’인 가치는 인간 보편적 가치로 여겨지지 않았으며, 어떤 기술이나 상품이 ‘여성적’이라면 그건 ‘열등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 결과 전기차는 휘발유차와의 경쟁에서 밀려나 사라졌고, 우리는 이 친환경적 이동 수단의 재발명을 100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이제 와서 옛날 사람들의 고리타분한 생각을 비웃기는 쉽다.

그러나 과연 오늘날 우리는 비슷한 실수를 안 할까?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오늘날에도 우리가 어린 시절 공상과학 만화에서 보았던, 집안일을 알아서 척척 해내는 AI 로봇은 등장하지 않았다(8장).

그 이유는 또 다시 젠더와 연관된다.

그간 AI 연구자들은 교육 수준이 높은 남성 과학자들이 어려워하는 문제를 푸는 능력을 곧 지능이라고 여겼다. 그 결과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여러 능력들을 간과했는데, 그중 하나가 신체적 지능이다.

신체는 인간이 병들고 노화하는 취약한 존재이며, 타인에게 의존한다는 불편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가부장제는 여기에 ‘여성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무시하고 외면했다.

남성 과학자들은 AI가 혜성과 미사일 궤도를 계산할 수 있다면 청소나 설거지처럼 몸 쓰는 하찮은 일쯤은 자동으로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기술과 발명의 역사에서 로그아웃된 여자들

만약 더 많은 여성 과학자들이 AI 개발에 참여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성의 관점에서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두 번째 층위는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기술 발전에 참여해 왔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스물한 살에 소아마비에 걸려 15년간 목발에 의지해 살아온 아이나 비팔크는 자신이 경험한 신체적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직접 보조 보행기를 만들었다(5장).

그가 발명한 것은 단순한 신체 보조 기구가 아니라 자유라는 삶의 비전 그 자체였다.

이 책이 많은 뛰어난 여성 인물들 중에서도 특히 비팔크를 내세운 것은, 그의 사례가 ‘여자도 발명했어, 남자들이 한 것 우리도 했어’라고 말하는 것을 넘어,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들이 기술과 발명에 참여할 때 어떤 새로운 가능성과 잠재력이 열릴 수 있는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하지 않는 세상에 사는 사람은 그 세상을 개선할 방법을 더 쉽게 상상할 수 있을지 모른다.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문제는 비팔크에게 돈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장애가 있는 여성의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이고 투자해 줄 사람이 없었다. 결국 비팔크는 싼값에 자기 아이디어를 팔았다.

집단의 측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돈과 경제적 기회가 더 적지 않은 국가는 지구상에 단 한 곳도 없다.

여성이 소유한 사업체의 약 80퍼센트가 필요한 신용 대출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벤처 캐피털의 97퍼센트 이상이 남성 창업자에게 흘러 들어간다.

오늘날의 금융 시스템이 여성을 조직적으로 배제하는 이와 같은 방식은 자연스럽게 여러 아이디어와 발명 중 어떤 것이 실현되거나 실현되지 못할지를 결정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비팔크의 이야기는 역사로라도 남았지만,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채 지워진 아이디어들은 얼마나 많을까. 그것은 분명 여성들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손실이다.

인류 최초의 도구가 창이 아니라 뒤지개였다면?

여성과 과학기술의 관계를 다루는 세 번째 층위는 기술과 발명이 무엇인가 하는 정의 자체를 다시 생각하는 데 있다.

우리가 인류의 발달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유인원에서 진화한 수염이 텁수룩한 남성이 날카로운 나무 막대기를 창으로 만들어 주위에 겨누는 모습이다.

정말 그랬을까?

우리는 기술이 자연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무기로부터 시작된다는 남성 중심적이고 폭력적인 서사를 너무 쉽게 믿었다.

이 서사는 현대에 와서, 전쟁과 군대로부터 온갖 과학기술이 발전한다는 스핀온/오프 이론으로 이어진다.

최초의 인류가 든 막대는 창이 아니라, 땅에서 고구마 같은 식물을 캐내는 뒤지개였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그 도구를 든 인간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었을 확률이 높다.

창이 아닌 뒤지개가 먼저라면, 인류의 서사 전체가 달라진다. 기술과 발명이 언제나 지배하고 장악하고 착취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확실성을 잃는다.

요리와 바느질, 돌봄을 위한 기술이 핵무기나 우주 탐사선을 만드는 것만큼 인류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류의 달 탐사는 우주복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우주복은 나사가 기대한 군사 기술 전문가가 아니라 여성용 속옷을 만드는 재단사들의 손에서, 단단한 갑옷이 아니라 부드러운 천으로 만들어졌다(3장).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이런 기술을 정식 기술로 취급하지 않는다. 여성에 속한,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많은 기술이 사소하고 당연한 것으로 취급되고, 그로 인해 정당한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여성의 손에 묶인 밧줄을 끊을 때

우리가 무엇을 해낼 수 있을지 상상해 보라

이 책은 이처럼 여성과 여성성을 무시하고 배제해 온 역사적 사례들로부터 출발해 플랫폼 노동(7장), 인공지능(8장/9장), 기후 위기(10장) 등 현재와 미래의 이슈들로 논의를 확장해 간다.

‘미래’라는 키워드 아래 놓인 마지막 두 장은 지금까지의 우리 삶을 전면적으로 바꿀 것으로 예상되는 거대 위기와 그에 대한 해결책을 다룬다.

과연 ‘제2의 기계 시대’가 도래하면 로봇과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수십억 명 인구가 유발 하라리가 말한 ‘쓸모없는 계층’으로 전락하게 될까?

산업혁명 초기, 기계의 힘이 남성의 근력을 대체하자 그 기계를 돌리기 위해 고용된 것은 여자들이었다. 공교롭게도 미래에 로봇과 AI가 인간을 따라잡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영역인 감정 지능, 관계 경제, 돌봄 노동 역시 우리가 여성적이라고 여겨 온 것들이다.

그렇다면 기술 디스토피아에 대한 대안은 ‘여성’과 ‘과학기술’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기술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예측하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직접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기술을 발전시킬지를 결정하고 거기에 투자하는 것은 인간이다.

지금까지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과학기술이 열심히 달려 도착한 곳이 탄소사회이고 불타는 지구라면, 이제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여성과 남성,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을 구분해서 무엇을 배제하고 무엇을 우위에 놓을 것인지 따위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

역사 내내 젠더 관념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류의 혁신을 방해해 왔다.

이는 “우리가 한쪽 손이 묶인 채 세상을 발명해 왔다는 뜻이다.

그 밧줄을 끊었을 때 우리가 무엇을 해낼 수 있을지 상상해 보라.

”임소연이 말한 것처럼 “지금껏 배제되었던 것, 그래서 새로운 것, 거기에서부터 혁신과 창의성이 나올”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껏 과학기술의 영역 바깥으로 몰아냈던 여성과 여성적인 것을 다시 불러들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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