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박성창은 파리지앵입니다. 일년에 한번은 파리여행을 했다네요. 코로나 시대 파리를 갈 수 없어서 대신 파리에 관한 책을 썻다고 합니다. 저자는 묻습니다. 파리는 어떻게 문화예술의 수도가 되었을까요?

19세기 프랑스에서 ‘혁명’만큼 자주 쓰인 단어도 없습니다. 파리는 혁명의 분화구 위에 문화예술의 꽃을 피운 도시입니다. 혁명의 에너지가 문화예술의 혁명으로 전이된 특이한 사례입니다. 파리의 매력을 베수비오 화산에 비유한 발터 벤야민은 “파리에서는 혁명이라는 용암 위에서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예술과 화려한 생활과 패션이 꽃을 피우고 있다.”고합니다.

혁명을 추동한 근대화의 동력이 사회 전반 그리고 문화예술로 확산되며 혁명이 시너지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정치’ 혁명, ‘산업’ 혁명, ‘도시’ 혁명이 ‘문화예술’ 혁명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특히 오스만의 파리 대개발(1852~1870)은 중세의 파리를 부수고 새로운 파리라는 도시를 창조합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는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신화의 절정입니다. 자동차, 지하철, 자전거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인상주의의 미학적 혁신이 이루어지고, 피카소로 대표되는 수많은 파리에 도착했습니다. 파리를 문화예술의 성지로 만든 요인은 재주많은 수많은 이방인을 받아들이고 서로 네트워킹 했기 때문입니다.

댓글을 남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