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를 지내면서 세계의 전염병에 관한 책이 있어도, 우리의 전염병 역사에 관한 책이 없어 아쉬웠다. 마침 신병주 교수가 기록 속에 남아있는 전염병의 역사를 정리해주었다.

우선 ‘조선왕조실록’ 같은 연대기 자료는 물론이고 개인의 일기나 문집 등에 조선시대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존재한다. 전염병을 극복해 나가는 방법 또한 사회적 격리, 의학적인 방법의 동원, 의료인 양성, 전염병 발생 지역에 대한 국가적 지원 등 현재의 모습과 비슷함을 알 수 있다.

현대적 의학이 발전하기 전이기 때문에 전염병 자체와 전파경로 등을 정확히규명할 수는 없었다. 전염병의 실체를 모르기때문에 다소 미신적인 서구의 미아즈마(Miasma) 이론과 비슷하다. 곧 콜레라 흑사병 등 질병의 발병원인이 ‘미아즈마‘ 곧 ‘나쁜 공기’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에서도 시대별로 유행하는 전염병의 특징 등을 파악할 수는 있었다. 문종시대를 통해 본 조선 전기에는 잦은 기근과 역병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대부분의 역병들은 기근으로 인한 영양실조, 불결에 의해 촉발된 질환으로 여겨진다. 16세기에는 오늘날 발진티푸스나 장티푸스에 해당하는 온역(溫疫)이 유행했다. 16세기 이후 면포의 보급으로 이가 기생할 수 있는 환경 조성되어 생긴 전염병이라고 한다.

병자호란를 거쳐 숙종시대에는 천연두가 유행했다. 실제 숙종은 1683년 10월 18일에 발병해 11월 1일에는 크게 회복되어 딱지가 떨어졌다고 한다. 조선시대 관리들의 초상화 화첩인 『진신화상첩』에는 22명의 관리 초상화 중 5명의 인물에서 곰보 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조선시대 관리들의 초상화 화첩인 『진신화상첩』에는 22명의 관리 초상화 중 5명의 인물에서 곰보 자국이 선명하게 보이다. 정약용도 천연두를 앓아 눈썹에 흉터가 있었다고 하니, 천연두는 그만큼 일반적인 역병이었다.

19세기 조선을 집어삼킨 전염병은 콜레라(호열자, 쥐통)이다. 개항과 함께 해외에서 온 선원에 의해 전파되었다고 한다. ‘호열자’라고도 불리는데 호랑이가 몸을 찢는 것과 같은 고통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발 뒤꿈치 근육의 경련을 수반하기 때문에 쥐에게 물린 것 같다고 해 쥐통이라고도 불렸다. 귀신을 잡는다며 고양이 그림을 붙여놓기도 했다.

역사 속 전염벼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인듯 하다. 역사학뿐만 아니라 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전염병자체의 역사 뿐만 아니라 전염병이 역사에 미친 영향까지도 더 깊고 넓게 연구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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