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우 교수는 잘 몰랐던 조선의 ‘죄와 벌’을 이야기했습니다. 어찌보면 사소하지만 조선시대의 다양한 사례를 알아가는 재미가 제법 쏠쏠합니다.

예를 들면 춘향이는 목에 칼을 차고 옥살이를 했지만. 춘향의 목에 씌운 칼은 여성에게 사용이 금지된 형구였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여자는 칼을 차지 않았습니다.

목민심서에 막상 당하면 평생 부모 제사지낼 수 없다고 묘사한 주리틀기는 조선후기에 등장했습니다. 주로 도적을 다스리기 위해 포도청, 진영에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백범 김구도 한말에 주리틀기를 당했습니다. 그는 해주감옥에서 정강이뼈가 허옇게 드러날 정도로 모진 주리 고문을 당했다고 합니다.

뿐만아니라 조선의 죄와 벌 규칙과 체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 무렵부터 사용된 형벌이며 형구의 크기, 횟수, 타격 부위까지 엄격히 규정되어 있어 아무나 집행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형태의 처벌이 국가에 의해서만 가능했습니다.

다만 조선시대에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 사적인 처벌이 허용됐습니다. 극단적인 경우 자신의 부모나 가까운 친인척에게 해를 끼친 자를 살해했을지라도 복수 살인의 정당성이 인정되었습니다. 홍콩영화의 테마이기도 한 복수는 역사적 전통이 있었다 봅니다.

정조가 직접 처리한 1,112건 사건을 기록한 『심리록』을 통해 본 조선후기의 판례는 전기와 다르다고 합니다. 살옥죄인의 처리와 징벌이 완화되어 거의 사형을 시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반적으로 조선전기의 소송절차 퇴장하고 사건을 간단히 처리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변화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요즘 새람스럽게 역사를 기록한 그림 즉 이미지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170여 컷의 컬러 도판을 보니, 그 어떤 글보다 더 직접적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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