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총리 중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 마가렛 대처(1979~1990)입니다. 그녀는 이른바 영국병을 치유한 혁명가이자,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보듯 수많은 가족을 망가뜨린 ‘마녀’입니다.

마가렛 대처는 소도시 그랜섬에서 식료품 집 딸로 태어났습니다. 대처가 자란 아버지의 모퉁이 가게 위 좁은 아파트에는 수도, 중앙 난방, 실내 화장실조차 없었습니다. 자수성가해 시장이 된 아버지의 연설을 들을 때마다 그녀는 심장이 쿵쾅거렸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교훈인 ‘근면한 삶에 보상이 따른다’는 종교적 신념도 함께 믿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승부욕이 강했고, 마침내 소원대로 옥스퍼드대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녀는 하루빨리 직업 정치인이 되고 싶었고, 엘리트 남성들의 전유물인 의회에서지도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1975년 드디어 보수당 대표가 됩니다.

1926년이래 최대의 총파업인 1978~79년 ‘불만의 겨울(The Winter of Discontent)’이 왔습니다. 당시 집권당인 노동당의 소득정책(임금인상률 5% 제한)에 항의하여 공공 부문 노조가 광범위한 파업을 벌입니다. 거리에 쓰레기가 거리에 쌓이는 등 도시 기능이 마비되면서, 여론은 노조에게 등을 돌리게 됩니다. 1979년 5월, 보수당은 압승했고, 마침내 대처가 집권합니다. 1979년 5월 4일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4 May 1979: Britain’s first woman Prime Minister arrives at Downing Street to take up office

총리 대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을 주장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기업 경영이 보장되어야 하고, 복지는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당과 차별점이 분명한 진정한 보수당을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총리 대처가 약속한 것은 재정적자 해소, 공기업 민영화, 공공임대 주택  불하, 세금인하 등이 었습니다. 대처는 당장 약속을 지킬 수는 없었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포클랜드 전쟁

1982년 4월 아르헨티나는 영국령 포클랜드를 점령합니다.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수천㎞ 떨어진 인구 1800명의 조그마한 섬때문에, 영국이 군사작전을 감행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대처는 강력하게 대응했고, 포틀랜드를 되찾았습니다. 이 전투로 영국 구축함이 침몰 당하고 병력 250명이 전사했습니다. 대처는 포틀랜드 전투를 작은 영토 분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대처는 이 전투에서의 승리가 필요했고, 필요하다면 전쟁이라도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포크랜드 전쟁의 승리는 경제의 어려움을 잊어버리게 했습니다. 보수당은 1983년 영국 총선 전후최대 승리를 했습니다.

공공임대 주택 매각

전후 영국정부는 막대한 양의 임대주택을 짓고 운영해 왔습니다. 대처는 1980년부터 공영 임대주택을 거주자에게 매각하기 시작합니다. 대처는 원래 임대주택 판매에 반대했지만, 그 효과를 깨닫자 자신의 정치적 신념으로 삼아 주택소유 붐을 일으켰습니다. 임대주택을 거주자에게 시가의 반값 혹은 3분의 1까지 할인하여 불하합니다. 1990년 대처가 물러날 때까지 총 150만 호를 매각합니다. 임대주택을 판매하여 추가적인 재정을 확보했을 뿐만아니라, 임대주택 관리비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과정에서 시장의 주택가격이 상승하면서 금전적 혜택이 중산층에게 돌아갔고, 두터운 보수당 지지자를 만들었습니다.일석 삼조의 정책이었습니다.

공기업 민영화

대처 정부가 들어선 1979년부터 1992년까지 총 415억 파운드어치의 국가소유 주식들이 민간으로 넘어갑니다. 1992년이 되면 이제 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공기업이 해체됩니다. 1989년 10월에 있은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대처는 “일주일에 200만 파운드씩 손해를 입히던 공기업들이 이제 민간부문에서 일주일에 1억 파운드씩 이익을 내고 있다”고 보고합니다. 무엇보다 민영화의 마력은 ‘파산할 수 없던 것을 파산할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민영화로 부실기업의 적자를 메워주는 재정부담에서 해방되고, 상당한 재정을 확보했습니다. 민영화 덕분에 평범한 사람들이 주식에 직접 투자할 수 있게 됩니다. 대처는 자신이 추진한 이 변화를 ‘대중 자본주의(popular capitalism)’라고 불렀습니다. 대중 자본주의 덕분에 영국은 광범위하게 주식 소유자가 분포된 나라가 되었습니다.

구조조정

반면에 구조조정은 정치적으로 힘든 상황을 만듭니다. 노조면책특권 축소, 노동자 해고가능 등 15개의 노동법 통과됩니다. 1979년 공무원 1/3가량을 감원(73.5만명에서 49.5만명)합니다. 대처는 1984년 전국 20여 개의 국영 탄광을 폐쇄하고, 약 2만 명의 노동자를 해고합니다. 광부들은 장기파업하고 격렬히 저항했지만, 사전 준비된 계획하에 무력화됩니다. 대처는 에너지원을 석유와 가스로 바꾸어 갔고, 국산보다 25%나 싼 석탄 2년치를 수입해서 비축해두었습니다. 대처는 “협상은 없다. 법이 노조의 주장에 굴복할 수는 없다”라고 선언하고 탄광 지역에 경찰병력을 집중 배치했습니다. 이 벼랑 끝 대치는 무려 1년여 동안 지속됐습니다. 마침내 1985년 3월 탄광노조는 대처에게 백기를 들고, 조건 없는 직장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대처는 1987년 6월 선거도 승리 합니다.

성인세(인두세 ) 도입

대처는 1990년 성인세(인두세 혹은 지방세) 도입합니다. 소득세 대신 모든 주민에게 똑같이 부과 (1인당 평균 363파운드부과, 현재 기준 59만원 상당)합니다. 이득 본 사람은 800만명, 손해 본 사람은 2,700만명이 됩니다. 손해 본 사람이 세배 더 많은 정치적 오판입니다. 이에 반발하여 영국 각지의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폭동 사태까지 일어납니다. 가장 큰 규모의 시위는1990년 3월 31일 토요일에 트라팔가 광장 반인두세 시위가 일어납니다. 결국 대처는 같은 해 11월에 총리직을 사임합니다.

공식적으로 ‘주의(主義) ism’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마가렛 대처 총리가 유일합니다. 대처리즘은 영국인들의 삶을 뿌리 채 흔들었습니다.‘대처 세대’ 혹은 ‘대처의 아이들’은 대처의 집권기에 10대를 보낸 영국인들입니다. 그들은 높은 실업과 낮은 임금에 따른 미래에 대한 불안감, 복지정책 축소로 인한 가정파괴를 겪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흡연과 알코올에 의존하며 개인주의적이며 퇴폐적인 특성을 보입니다. 바로 그들이 대처의 죽음에 환호했던 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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