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존슨이 영국의 전설적 해적인 헨리 에브리(Henry Avery, 1659~?) 소재로 ‘인류 모두의 적’이란 책을 출간했습니다. 과학저널리스트인 존슨은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감염 도시’ 등 과학지식을 활용하여 숨어 있는 맥락과 의미를 재미있게 빚어내는 솜씨를 발휘하여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번에는 보물선 한 척을 약탈한 해적왕 헨리 에브리가
어떻게 근대사의 향방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야기합니다.

17세기 홍해와 카리브해를 주름잡은 해적선 팬시호의 선장 헨리 에브리는 1695년 무굴제국의 메카 순례선인 건스웨이를 공격했습니다. 해적의 역사에서 단일 사건으론 최대 약탈로 기억되는 사건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메카 순례길에 올랐던 왕실 여인들을 대상으로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무굴 아우랑제브 황제는 격노했고, 그 분노는 동인도회사와 영국으로 향해, 황제는 하루아침에 영국과의 무역을 중단시켰습니다.

의도치 않은 한 해적의 약탈로 인해 무굴제국와 분쟁에 휩싸인 영국 동인도회사와 정부는 에브리에게 당대 최고액의 현상금을 걸고 인간 사냥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에브리의 머리에 가격표를 붙이고 본격적으로 인간 사냥을 시작한 때는 헨리 에브리가 수라트를 떠난지 10개월이 지난 뒤였습니다. 그의 해적들은 평생 먹고살고도 남을 몫을 분배고 이미 뿔뿔이 흩어져, 숱한 풍문을 남긴 채 종적을 감췄습니다.

헨리 에브리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다양한 사람에 의해 다양한 시각으로 각색되면서 인구에 회자되었습니다. 스티븐 존슨은 어쩌면 뻔한 해적 이야기에 자신만의 관점을 덧붙여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시도합니다. 곧, 해적왕이 자신도 모르게 대영제국 시대를 여는 방아쇠를 당겼다고 봅니다. 존슨은 이런 관점 아래 마치 추리 소설을 쓰듯이 대항해 시대의 역사 속을 파집고 들어갑니다.

무굴제국과의 무역으로 큰 이익을 보고 있던 동인도회사와 영국은 재빨리 사태 수습에 나섰습니다. 먼저 영국 정부는 에브리 일당을 ‘인류 모두의 적’으로 규정하고 막대한 현상금을 걸어 공개 수배했습니다. 에브리 한 사람의 목에 걸린 현상금만 해도 500파운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1억 3500만 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그 시대에 매우 파격적인 금액이었습니다. 최초의 ‘1억 현상금’이 공표되자 전 세계의 현상 수배범 사냥꾼들이 에브리 한 사람을 찾아 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적왕이 ‘인류 최초의 국제 현상수배범’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한편 동인도회사는 자신들이 직접 해적을 격퇴시키겠다고 황제에게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바다를 지키는 ‘황제의 군인’이 되겠다며 법적 권한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해득실을 따져본 황제는 결국 이 제안을 승인했습니다. 이로써 동인도회사는 처음으로 인도 지역에서 합법적으로 법을 집행하는 권한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얻은 권력은 점점 범위가 넓어져 훗날 동인도회사와 대영제국이 인도 전체를 지배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에브리가 저지른 범죄가 근대사를 지배한 대영제국의 탄생에 불씨가 된 것입니다.

에브리의 약탈 사건과 관련해 영국의 핵심 관계자들은 각자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를 정확히 몰랐습니다. 해적, 기업, 국가라는 뚜렷히 구분되는 세 범주가 있었지만 각 범주가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는 누구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었습니다. 헨리 에브리의 행동이 야기한 세계적인 위기는 결국 이런 근원적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혼란은 어떤 우연적인 사건에 의해 해결되기도 합니다. 한 명의 해적과 그의 도전, 무굴제국의 막대한 부, 영국의 제국주의적 야심, 타지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동인도회사의 절박함, 점점 중요해졌던 세계 무역망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우연히도 해적왕 헨리 에브리가 이 무역망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를 정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헨리 에브리가 그날 황제의 보물선을 약탈하지 않았다면, 대영제국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존슨은 말합니다.

댓글을 남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