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에 가치가 급상승한 기업중 하나가 대만의 TSMC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급습하면서 세계 반도체 부족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현상입니다.

재택 근무 등 언택트 활동이 급증하면서 컴퓨터, 서버 등 각종 디지털 기기 수요가 치솟았습니다. 그러자 디지털 기기속 핵심 부품인 반도체 공급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반도체 부족 사태는 자동차 업계를 강타했습니다. 자동차에 반도체를 공급하던 업체들이 단가가 더 비싼 디지털 기기 부품생산에 비중을 두면서 자동차용 반도체 품귀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TSMC는 반도체 생태계중에서 다른 회사가 설계한 반도체 칩을 대신 만들어주는 위탁 생산업체입니다. 이런 형태 반도체 업체를 파운드리(Foundry)라고 부르며, TSMC가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의 70%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전까지 사실 TSMC는 메모리 분야 1위 삼성, 비 메모리 분야 1위인 인텔에 비해 가치가 낮은 기업으로 인식됐습니다. 자체 반도체 설계 기술을 갖고 있지 않고 다른 업체가 설계한 칩을 만들어주는 역할이라는 평가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퀄컴이나 AMD처럼 생산시설 없이 설계만을 하는 팹리스 기업뿐만 아니라, 애플, 구글 등 비반도체 기업까지 직접 반도체를 설계하기 시작하면서 파운드리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상황에서 반도체 수요가 치솟자 파운드리의 역할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 바이든 정부는 애플, 퀄컴 등 주요 미국 기업의 핵심 반도체가 대만과 한국에서 생산되는 점을 우려하고 미국내 파운드리 투자를 장려하기 시작합니다. TSMC는 일본과 미국 등에 파운드리 공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반도체 산업은 단순히 비즈니스적 판단만이 아니라 국제정치의 맥락에서도 살펴봐야 하는 분야가 되었습니다. 미국과 중국, 글로벌 지정학적 위험에 얽힌 대만의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를 향후 행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리스 창은 ‘반도체 산업 진흥에 도움을 달라’는 대만 정부의 요청을 받아 1985년 귀국했습니다. 1987년 대만공업기술연구원장 ‘모리스 창’은 대만 정부와 외국인 투자자가 출자한 2억2000만달러 자본금으로 TSMC를 설립하고 최근까지 이끌었습니다.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한국 반도체 산업 리더를 합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만의 신생 반도체 산업을 개발하는 책임을 맡은 모리스 창은 계약에 따라 일하는 아웃소싱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글로벌 기업이 비용절감을 위해 아웃소싱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회사의 설계 요구를 반영한 칩을 만드는 회사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TSMC가 시작되었을 때 대략 20~30개의 팹리스 회사가 존재했습니다. 오늘날 그들은 셀 수 없이 많아졌습니다. TSMC는 회사가 칩 설계를 전문으로 하고 제조를 아웃소싱할 수 있도록 하는 이와같은 팹리스 혁명을 가능하게 만들고 주도한 기업입니다.

표준화 될 수 없는 특정기업에 필요한 반도체도 대규모의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테크기업에게 아웃소싱은 합리적 대안입니다. 서로 다른 칩설계라도, 공통의 공정과 규모의 경제가 있기에 파운더리도 역시 합리적 선택입니다. 다만 이를 위해 매우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합니다. 대만정부가 투자한 TSMC와 미국 테크기업 출신 모리스 창의 만남은 환상적 조합이었습니다. 2005년 CEO 자리를 넘겨줬던 모리스 창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다시 복귀합니다. 그가 있었기에 경쟁 업체들이 생산 라인을 폐쇄할 때 과감하게 설비투자를 늘리고 자산을 활성화할 수 있었습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글로벌 반도체 사업부 부사장 재임시, 모리스 창은 공격적인 칩 가격정책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처음에는 경쟁자를 제압하고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이익을 희생합니다. 시장지배력을 얻게 된 후,가격을 인상하여 지배적 공급자로서 이익을 거두었습니다. 당시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이 전략은 이제 업계 전반에 걸쳐 표준이 되었습니다. 

TSMC 영업이익의 상당부문을 기술 개발과 설비에 투자합니다. 후발 업체가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거액을 투자합니다. 최근 반도체시장의 변화에 대응하여 TSMC는 미국 애리조나, 일본 이바라키현 등 대만 외 지역에 공장과 연구시설 등에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 중입니다. TSMC가 처음 해외에 짓는 첨단 반도체 공장입니다.

최근 모리스 창은 각국의 반도체 현지화 보조금 지원을 언급하면서 “과거에는 글로벌화와 자유무역이 전 세계를 발전시켰지만, 오늘날 세계는 평등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대만 과학기술협회 20주년 행사) 실제로 대만, 한국은 이제 정치군사적으로 안전하지 않으므로 미국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두어야 하고, 미국기업에 보조금을 주자는 제안까지도 있습니다.

“1980년대에 미국은 전 세계 반도체 제조의 40%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17%로 줄어들었습니다. 미국은 현재 하락 반전을 희망하고 있지만 현지 생산은 불완전한 반도체 공급망과 더 높은 생산 비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투자되는 공급망 구축 비용과 납세의 대가는 상당할 것”이라며 비판적입니다. 그는 더 많은 투자와 보조금이 필요할 것이며 결국 납세자들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TSMC는 이례적으로 경제나 국제관계 분야의 인재를 채용하고 있다. ‘지정학적 및 경제적 변화가 IC 산업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서입니다. TSMC가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를 심각한 도전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리스 창은 더 이상 완전 경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 진출이 TSMC의 유일한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TSMC가 대만에서 주요 사업을 운영하는 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모리스 창은 누구인가?

격동의 어린 시절

1931년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Chang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중국의 격변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Chang의 가족은 중일 전쟁, 제2차 세계 대전 및 뒤이은 내전이라는 세 가지 다른 전쟁 동안 진격하는 군대를 피해야 했습니다.

“저는 1941년에 10살이 되었습니다. 그 해에 일어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물론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었습니다.”라고 Chang은 회상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내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던 홍콩을 공격했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 이전의 기억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이후의 내 삶의 기억은 매우 선명하고 생생합니다.”

비즈니스에 눈뜨다

모리스 창이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그의 부친이 IBM 주식 몇 주를 선물했는데, 그는 이때부터 미국 기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주가 동향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당시 그의 수중에는 IBM 주식밖에 없었으나 이때부터 하루라도 IBM 주가 동향을 주시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모리스 창은 자신이 날카로운 비즈니스 감각을 키운 것은 아버지가 선물한 IBM주식 몇 주 덕분이었다고 회고한다.

인생 롤 모델

살아가면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TSMC의 수장 모리스 창에게 평생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누구일까? 모리스 창 자신이 여러 차례 언급한 TI 이사장 패트릭 유진 해거티다. 40여 년 전, 해거티는 TI에서 ‘혁신’, ‘성실’, ‘고객을 왕으로 모신다’는 기업문화를 구축하여 오늘날까지 이를 지속해왔다.

혁신과 성실은 모리스 창이 소중히 받드는 TSMC의 경영이념이기도 하다. 고객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모리스 창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고객을 위해서라면 TSMC는 섶을 지고 불길로 뛰어들 수도 있다.”해커티는 고객의 목소리를 매우 중시하며 내부 승진때도 큰 고객의 의견을 반영했다. 모리스 창은 “ 이부분은 나도 배워서 TSMC 인사 이동이 있을 때 고객의 의견을 참고한다”고 말했다.

브리지 게임으로 쌓은 우정

모리스 창은 카드 게임 브리지 게임 매니아로 잘 알려져 있다.1985년, 대만으로 돌아와 공업연구원장을 맡게 되면서 모리스 창은 대만 브리지 게임계와 더 자주 접촉했다. 황광휘의 소개로 그는 당시 USI 회장 장즈젠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관계는 브리지 게임으로 시작되었으나 모리스 창의 창업과정에서 진정한 우정으로 발전했다. 장즈젠이 모리스 창에게 부족한 자금을 늘 지원해줬다.

기업경영에 있어 모리스 창은 인정의 요소를 개입시키지 않았으며 부하 직원의 실수에는 냉혹한 태도로 따끔하게 질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즈젠과 브리지 게임으로 이어진 12년 우정은 한편으론 중국 전통 가치관 속 보은 정신을 보여준다. 이는 오랫동안 성공한 기업가로 살아온 모리스 창의 이미지에 부드러운 면모를 더해준다.

​​빈틈없는 준비

2006년 모리스 창은 부인 장수펀과 대만을 대표하여 베트남에서 열리는 APEC 비공식 정상회담에 참가했다. 그의 행보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단 이틀의 짧은 일정을 위해 그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는 양복 안주머니에 늘 수표책 두께의 수첩을 넣고 다니면서 사람들과 대화할 때 중요한 대목이 나오면 신중하게 기록해두곤 했다.

진정은 통한다

2002년 10월. 부인 장수펀의 설득으로 모리스 창은 사진작가 커시제의 카메라 앞에 섰다. 커시제는 창의 멋진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담배를 한 모금 권했다. 깊은 생각에 잠긴 그는 담배 연기에 둘러싸였고, 사색은 연기와 함께 허공으로 올라갔다. 한 모금 더 깊이 들이 마셨다가 뿜어내니 짙은 연기가 서서히 분출되며 자욱한 안개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저 이를 정말 잘 나타내는 장면이네요!” 한쪽에서 장수펀이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근엄한 가면을 벗어던지고 사진작가 커시제의 렌즈 앞에서 모리스 창 부부는 진실한 면모를 드러내며 영원히 남을 순간을 기록했다.

궁함 속에서 진리를 찾다

“나는 최근 번역에 큰 관심이 생겨서 중국어와 영어의 의미 차이를 늘 연구한답니다.” 모리스 창의 이 한 마디에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기자들은 그의 취재에 준비할 목록을 하나 더 추가했다. 모리스 창의 산업과 경영에 관한 취재 외에 영중사전까지 준비해서 그의 ‘영어 수업’ 진도를 따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겉과 속이 같은 사람

“제 남편은 성실함을 중요시하며 개인적으로 이익을 취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장수펀은 TSMC의 수첩 몇 권을 가져다 집안에 뒀다. 지인들에게 선물할 요량이었다. 모리스 창은 장수펀에서 TSMC에 돈은 냈냐고 물었다. 부인에게도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라고 요구한 것이다.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모리스 창은 두 후계자 류더인, 웨이저자에게도 식사 대접을 따로 한 적이 없었다.

댓글을 남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