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지난 4년 동안 시달린 전쟁과 전염병이 크게 영향을 미친 선거였다.

1차 세계 대전으로 10만명, 스페인독감으로 65만명의 미국인이 사망했다. 시카고 등 도시에서의 폭동, 육가공업이나 철강산업의 파업, 무정부주의자의 폭탄 테러가 전쟁 후 미국 도시를 뒤흔들었다.

수정헌법 19조에 의해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800만표 여성 유권자들이 선거의 새로운 변수였다.

민주당 현직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인기가 없었다. 그가 국제연맹의 설립을 주장했지만,정작 ‘군사적 개입이 필요할 때 의회가 평가할 권한을 보장하는’ 공화당의 수정안을 거부했다. 미국이 국제연맹의 설립을 제안했으나,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미국역사에서 우드로 윌슨만큼 압도적 거부와 반대에 부닥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평해진다.

백악관을 되찾기 위해 공화당은 워렌 G. 하딩 상원의원을 선택했다. 스윙 스테이트인 오하이오 주 출신의 신문 발행인 하딩은 미국인들이 갈망하는 정치적 위안을 전달할 수 있는 안전한 선택이었다.

하딩은 ‘정상으로의 복귀(A return to normalcy)’를 캠페인 슬로건으로 채택했다. 하딩은 ‘정상’에 대한 자신의 열망은 시계를 되돌리고 싶은 열망이 아니라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질서를 의미한다고 했다. 과도하지 않은 정상적인 절차, 자연스러운 방식을 의미한다고 했다.

하딩은 ‘프론트 포치 캠페인’으로 백악관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수많은 방문객들이 하딩의 집에 찾아와 베란다 주변에 모여서 후보자의 연설을 들었다. 그들은 하딩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고향 신문에 보내 하딩을 선거캠페인을 도왔다.

마침내 하딩은 선거인단과 대중 투표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아, 미국의 29대 대통령이 되었다. 선거인단에서 4 대 1에 가까운 압도적인 차이로 민주당 후보 콕스를 이겼다. 선거의 득표율은 60.3% 대 34.1%로, 1920년 이후 현재까지도 깨지 못한 기록이 되었다.

하딩은 1923년 미국 횡단 여행을 하던 중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에서 57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의 재임기간에 일어난 다양한 스캔들로 인해, 하딩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코로나와 러시아의 전쟁개시로 어지러운 이때, 3월의 대선과 그 이후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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