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긴 역사에서 일본은 16세기 까지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중원의 패권은 한족과 북방의 거란, 몽골, 여진의 차지였습니다. 또 지정학적으로 중원의 문명을 한반도를 통해 수입해야 하는 문명 수입국이었습니다.

그런데 16세기이후 이후 조선을 침략하고 대놓고 명 정벌을 공언할 정도로 동아시아의 강자로 우뚝 솟았습니다.

동아시아 역사에서 이런 드라마틱한 힘의 역전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주경철 서울대교수가 2008년에 발표한 ‘대항해 시대’가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단초를 비로소 제공했습니다.

유럽~아랍~중앙아시아~중국를 연결하는 실크로드가 중심 네트워크일 때는 네트워크의 끝 단에 있는 일본이 제일 불리했습니다.

대서양~인도양~남중국해로 이어지는 바닷길이 열리자 거꾸로 일본은 유럽의 정보를 가장 먼저 수신하는 노드로 바뀌었습니다.

주경철 교수의 새 책 ‘바다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인류의 미래를 바다를 통해 조망합니다. 이 책은 대륙과 농경문화 중심의 역사관이 놓친 나머지 반쪽을 보여줍니다. 8장 이슬람의 바다편을 발췌하여 읽고 10줄로 요약했습니다.

10줄 요약_8장 이슬람의 바다편

1.622년은 인간사회가 처음으로 신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새로운 공동체 움마(Ummah)를 형성한 중요한 해이기때문에 이슬람 원년이 되었다.

이슬람권은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세 대륙에 걸쳐 있고 동서로 길게 뻗어나갔다. 이 광대한 세계는 아라비아,페르시아,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에스파냐 등 다수 문명권으로 구성된 초 문명권이다. 또 중국, 인도, 유럽, 아프리카, 러시아 문명과 마주하고 있다.

2.광대한 이슬람 지역내 물자, 사람, 정보가 낙타 캐러밴 덕분에 유통되었다. 낙타 등에 짐을 실을 수 있는 북아라비아 낙타안장(North Arabia Camel saddle)이라는 신 기술이 200년경에 개발되어 낙타를 이용한 물류시스템이 작동하였다.

3.사막의 배 (낙타 캐러밴) 뿐만 아니라 바다의 배도 주목해야 한다. 이슬람으로 확산으로 인해 지중해-홍해 루트와 인도양 교역 루­트가 연결되었다.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의 갈등은 바다에서는 두드리지 않았다.

이슬람권과 인도양 각지에서 널리 사용된 선박은 다우(dhow)선이었다. 지중해에선 삼단 갤리선, 중국에서는 정크선, 인도양에서는 다우선이 대표적인 선박이었다.

4.다우선 의 첫째 특징은 높은 마스트에 거대한 삼각범을 쓴다는 점이다. 둘째 다우선은 못을 사용하지 않고 선체를 섬유, 밧줄 가죽끈 등으로 묶는 방식을 사용했다. (1998년 자바해 벨리퉁섬 근처에서 인양된 벨리퉁 침몰선이 전형적인 다우선) 항해술은 위도를 계산할 수 있는 카말(kamal)이라는 도구를 활용하였다.

선박과 항해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해서 원거리 화물수송을 무리 없이 잘 수행하였다. 다우선으로 멀리 중국까지 항해하였다.

5.소하르, 시라프, 키시, 호르무즈, 아덴, 제다 등 항구가 교역중심지였다. 이중 시라프는 고대와 중세 페르시아의 가장 중요한 항구였다. 물이 깊었고 또 시라즈의 캐러밴 루트와 연결된 지점이어서 10세 말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6.인도양의 아프리카 방면 교역에서 페르시아인들이 활약하였다. 아프리카 동해안의 스와힐리 지역에 종교적,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잔지바르, 킬와 등 여러 지역에서 시라프 도자기, 중국 도자기가 다수 출토되었다.

중요 교역 산물로는 대모, 상아, 철, 금 등이었다. 짐바브웨에서 생산된 금은 소팔라로 이송되어 수출되었다. 12세기에 킬와가 이 항구 통제권을 장악하였다.

스와힐리 지역은 유례없는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14세기는 8세기와 달리 페르시아인이 아니라 아랍인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동남아시아와의 관련성도 커져갔다. 시아파가 거의 사라지고 수니파가 지배하였다.

7.아프리카 교역 상품으로 노예의 비중이 컸다. 이 분야 전문가인 랄프 오스틴은 7~19세기에 아프리카 대륙을 북쪽과 동쪽으로 횡단하는 노예무역의 규모를 1440만명으로 추산하였다.

869년 바그다드와 바스라 사이 지역에서 잔지 노예반란이 발생하여 10년이상 지속돼 이 지역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아바스 왕조 최대 재앙 중 하나다. 또 인도양, 동남아시아,중국에 이르는 거대한 교역 구조의 변화를 가져온 주요 사건이다.

8.인도양에서 활약했던 해적 중 인도계 해적은 바와리지라 불렸다. 해적은 이 지역 사회와 연결되어 있었다. 따라서 해적 강도 노예약탈 등은 전문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상인과 선원이진지 기회 있을 때마다 언제든지 뛰어드는 모험이었다.

9.페르시아 아랍 상인들이 처음부터 광저우로 간 것은 아니다. 베트남 항구들이 동쪽의 종점이었다. 대중국 교역에서 중심지 역할을 하였던 시라프에서 광저우까지 해로는 약 900킬리미터였다. 다우선박의 우수함,몬순 체제, 지배층의 소비재 수요가 원거리 무역을 가능케 만든 원동력이었다.

10.이슬람권과 중국 사이에는 어떤 상품들이 오갔을까? 벨리퉁 침몰 선은 중국과 자바를 잇는 해로상에서 침몰했는데 동전, 창사에서 생산된 도자기가 주요한 화물이었다. 도자기는 철저히 해외시장 수요에 맞춘 것이었다.

기하학적 문양, 쿠란 글귀 등을 적색, 녹색으로 파놓은 것은 아바스 왕조시장을 겨냥한 것이었다. 도자기 생산에 필요한 코발트 안료는 페르시아에서 수인한 것이었다. 코발트 안료는 페르시아에서 잘 이용되지 못한 반면 중국에 수출되면 완벽한 청색을 구현하는 데 사용됐다. 그야말로 세계화의 시작이라 할 만하다.

저자소개_주경철

근대가 태동하는 순간부터 대항해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바다와 해양 문명을 통한 전지구적 통합의 과정을 밀도 있게 연구해온 서양사학자. 이 책은 그동안의 연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바다의 관점에서 인류 역사의 시작에서부터 다가올 미래까지 살피며, 역사를 통해 인류와 바다의 공존을 모색해보는 시도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같은 대학원 서양사학과를 졸업한 후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 소장과 중세르네상스연구소 소장, 도시사학회 회장을 지냈다.

그동안 《대항해 시대》, 《문명과 바다》, 《문화로 읽는 세계사》,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근대 유럽의 형성》, 《히스토리아》, 《히스토리아 노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모험과 교류의 문명사》, 《마녀》, 《일요일의 역사가》, 《그해, 역사가 바뀌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3》, 《도시는 기억이다》(공저), 《18세기 도시》(공저), 《어떻게 이상 국가를 만들까?》, 《질문하는 역사》 등을 쓰고,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3》, 《제국의 몰락》, 《유토피아》, 《물의 세계사》(공역), 《지중해: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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